편의점 아르바이트
며칠전 어김없이 동네 입구 편의점에 들렀다.
스타벅스 카페오레 한 캔.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서서 계산을 하곤 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캔의 감촉이, 혼자 사는 아침의 유일한 온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사장님이 없었다.
대신 서른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살짝 치켜 올린 얼굴.
표정이 담백하고, 손놀림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혹은 이제 막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사람처럼.
“카페오레 하나 주세요.”
그녀가 고개를 들며 나를 보았다.
눈이 잠깐 마주쳤다.
그 시선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에 미세한 흔적을 남겼다.
낚싯대를 챙기고 남원 큰엉으로 향했다.
갯바위를 조심스레 내려가 자리를 잡고, 네 시간 남짓 물결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언제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고요했다.
벵에돔과 돌돔이 여섯 마리.
생각보다 운이 좋았다.
손바닥에 남은 비늘의 차가운 감촉이, 하루의 무게를 잠깐 덜어 주는 듯했다.
해가 기울 무렵 돌아 나오다가 다시 그 편의점에 들렀다.
그녀가 여전히 카운터에 있었다.
“아침에 뵌 분이시네요?”
먼저 말을 건넨 쪽은 그녀였다.
목소리가 낮고 차분했다.
저녁 공기처럼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네…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아뇨. 잘 모르겠는데… 오늘 하루만 봐달라고 하셔서요.”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술은 안 사가세요? 낚시 다녀오시는 것 같으신데…”
“전 술을 안 마셔요. 혼자 사는데… 청승맞게 술은…”
그녀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이 편의점 형광등 아래에서 유난히 부드럽게 번졌다.
“여자랑은 마시죠? 제가 같이 마셔 드릴까요? 뭣 좀 잡으셨어요?”
“벵에돔이랑 돌돔… 한 여섯 마리요.”
“많이 잡으셨네요. 한 삼십 분만 기다려 주세요. 같이 마시게.”
“어디서요? 날도 더운데 집에 가서 샤워도 해야 하는데…”
“댁에 가셔서 샤워하고 계세요. 이따 연락 드릴게요. 전화번호 말해 주세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 하루의 끝에 이름을 남긴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더운 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동안, 편의점 카운터에 서 있던 그녀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잡은 물고기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내며 차가운 물에 헹구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저예요. 편의점…”
차 키를 들고 나갔다.
저 멀리서 그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반바지에 흰 티셔츠. 머리를 살짝 묶은 모습이었다.
저녁 바람이 그녀의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차에 타면서 그녀가 작게 웃었다.
“이집 주인이셨구나. 누군가 했는데… 이 동네에 외지 분들이 많이 들어오셔서 요즘엔 옆집에 누가 누군지도 몰라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문 너머로 제주 저녁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일 끝난 거, 남편분은 모르세요? 늦게 가셔도 괜찮아요?”
그녀가 신발을 벗으며 대답했다.
“저 남편 없는데… 이혼해서 저 혼자만 내려왔어요. 사장님도 원래 여기 분 아니시죠? 말투나 행동하시는 게 토박이는 아닌 것 같아서.”
“네. 원주예요. 저도 이혼해서… 애들 유학 보내고 혼자 살아요.”
그녀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우와… 진짜 멋지게 사시네요. 이런 큰 집에서…”
나는 그냥 웃어 보였다.
그 웃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요가 담겨 있는지는, 그녀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잡은 횟감을 얇게 썰어 접시에 담았다. 하얀 접시 위에 투명한 살점이 겹겹이 쌓였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마주 앉았다. 그녀가 젓가락을 집어 한 점을 집었다.
입 안에서 살점이 녹아드는 동안, 서로의 침묵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재혼 안 해요? 남자 혼자 살기 힘들지 않나요?”
나는 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재혼은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어요. 혼자가 편해요. 잔소리하는 사람 없고, 눈치 볼 사람 없으니…”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도… 그래요. 처음엔 혼자 있는 게 무섭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편해지더라고요.”
대화는 조금씩 깊어졌다. 이혼의 이야기, 혼자 사는 밤의 고요함, 가끔 찾아오는 쓸쓸함.
서로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가까워 보이게 했다.
말은 적었지만, 그 적음 속에 오래 묵혀 둔 것들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녀가 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조금 촉촉해져 있었다.
창밖의 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오늘… 그냥 가기 싫어요.”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그녀의 손가락을 가볍게 잡았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그녀가 내 손을 되잡았다. 힘이 조금 들어갔다.
그 손끝에서 하루의 피로와 외로움이 동시에 전해져 왔다.
테이블 위의 접시를 옆으로 치웠다. 그녀가 일어서서 내 앞으로 왔다.
내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입술이 먼저 닿았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입술이 맞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숨을 나누는 소리가 가까웠다.
그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허리를 감싸고 조금 더 세게 끌어당겼다.
키스가 깊어질수록 그녀의 숨이 거칠어졌다.
티셔츠 밑으로 손을 넣어 허리선을 쓸어올렸다. 피부가 뜨거웠다.
그녀가 내 옷깃을 움켜쥐며 작게 신음했다.
그 소리는 밤공기처럼 낮고, 오래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침실로 들어갔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서로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
그녀의 몸이 드러났다.
가늘고 흰 어깨, 부드러운 가슴의 곡선, 배가 살짝 들어간 허리.
이혼 후의 시간이 남긴 흔적들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더 솔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흔적들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갔다.
내가 그녀를 침대에 뉘였다.
입술을 목덜미에 대고 천천히 내려갔다.
쇄골을 스치고, 가슴 사이로 내려가 유두를 입에 물었다. 그녀가 허리를 살짝 들었다.
손이 내 머리카락을 더듬었다.
“아…”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혀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애무했다.
다른 한 손은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쓸어올렸다.
이미 젖어 있었다.
손가락이 살짝 들어가자 그녀가 다리를 벌리며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이 내 손끝으로 전해졌다.
내가 그녀 위에 올라탔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뜨겁고 부드러운 살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내 등을 끌어안았다.
서로의 심장이 맞닿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공간이 잠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천천히 움직였다. 서로의 숨소리와 살이 맞닿는 소리만 방에 가득했다.
그녀가 내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더… 세게 해 주세요…”
리듬이 빨라졌다. 허리가 부딪히는 소리, 그녀의 신음, 내 숨소리가 뒤섞였다.
그녀가 다리를 내 허리에 감고 세게 조였다.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손톱이 내 등에 파고들었다.
그 아픔조차 어딘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먼저 몸을 크게 떨었다.
안에서 강하게 조여 오는 감각에 나도 참지 못하고 깊숙이 밀어 넣으며 함께 절정에 올랐다.
그 순간, 방 안이 고요해졌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한참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땀에 젖은 몸이 서로에게 붙어 있었다.
그녀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작게 웃었다.
창밖으로 제주 밤바람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바람 속에, 잠시나마 서로의 쓸쓸함이 부드럽게 녹아드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우리는 다시 한 번 서로를 찾았다.
더 천천히, 더 깊게.
서로의 빈자리를 잠시나마 어루만지듯이.











